1401년 4월 29일
전하께서 편전에서 정사를 보셨는데, 사관 민인생이 들어오려하자 박석명이 제지하였지만 끝내 들어왔소. 전하께서“편전은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말라” 하시자 민인생은“기록을 위해 들어와야 한다” 아뢰니, 전하께서는“사필을 곧게 써라” 하셨고 민인생은“거짓이면 하늘이 보고 있습니다” 하였소
1401년 5월 8일 전하께서 경연을 마치고 대신들과 주찬을 베푸시자, 사관 민인생이 “편전에서도 사관이 입시해 전하의 아름답고 정다운 강론을 기록하게 하소서”라 아뢰었소. 대신들은 “경연은 가능하나 정사까지는 불가”라 반대했고, 민인생은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고 맞서며 논쟁이 이어졌소.
1401년 3월 23일 전하께서 전날 민인생이 따라온 일에 대해“어찌 사관이 사냥터까지 따르는가?”하시자, 김과가“사관은 착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재앙을 주는 하늘의 뜻에 따라, 시정의 선악을 만세에 남겨 자손도 고칠 수 없사오니, 임금은 하늘과 사필을 두려워해야 하옵니다”라 아뢰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