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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관의 이야기. 유산으로 진실을 남긴이들.
예문관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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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년 4월 29일 전하께서 편전에서 정사를 보셨는데, 사관 민인생이 들어오려하자 박석명이 제지하였지만 끝내 들어왔소. 전하께서“편전은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말라” 하시자 민인생은“기록을 위해 들어와야 한다” 아뢰니, 전하께서는“사필을 곧게 써라” 하셨고 민인생은“거짓이면 하늘이 보고 있습니다” 하였소
1400년 12월 22일 수창궁에서 사약이 실화해 불길이 침실에서 대전까지 번졌는데, 다행히 민제와 김사형, 이거이, 하륜이 모여 불을 껐소. 그때에 사고가 수창궁 안에 있었는데 입직하던 사관 노이가 사고를 열어 손수 사책을 건져내었소.
1401년 3월 23일 전하께서 전날 민인생이 따라온 일에 대해“어찌 사관이 사냥터까지 따르는가?”하시자, 김과가“사관은 착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재앙을 주는 하늘의 뜻에 따라, 시정의 선악을 만세에 남겨 자손도 고칠 수 없사오니, 임금은 하늘과 사필을 두려워해야 하옵니다”라 아뢰었소.
1401년 윤3월 23일 전하께서 경연에 나아가 《대학연의》 등을 강하시던 중 사관 민인생이 “놀고먹는 무리가 많고 생산 백성은 적다”며 승려·사원을 비판하니, 전하께서는 “불교를 없애고 싶으나 태상왕의 뜻 때문에 급히 혁파하지 못한다”라 답하셨다.
1401년 4월 25일  전하께서 보평전에서 정사를 보시다 사관 홍여강이 뜰 아래 들어오자 환관을 시켜 내보내시고, “무일전 외에는 사관이 직접 입시할 필요 없으며 승지가 대신 기록하면 된다. 이곳은 편히 쉬는 곳이다”라고 명하시어 사관 입시를 제한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