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경남 6월항쟁] 투쟁 거점, 마산에서 진주로 확산
광장은 투쟁열기로 마치 해방구를 방불케 했다. 시민들의 호응과 지지도 높았다. 당시 경남신문 기자의 취재메모에도 ‘진주, 시민들이 옆에서 먹을 것 사주며 격려’라고 적혀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지금도 옛 진주시청(현 진주시청소년수련관) 앞에 있는 ‘노가네충무김밥’ 주인 아주머니도 그런 시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더울 때여서 학생들이 목이 말라 하길래 그랬을 뿐”이라며 “옆에 화랑다방 주인 여자도 참 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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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성당 농성해제 다음날 진주에서 최대규모 시위 | 마산이 거점이었던 6월 10일 이후부터 항쟁이 도내 전역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경상대를 비롯한 진주지역 학생과 시민들도 10일 이후에는 마산에 합류하는 대신 독자적인 항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11일 오후 경상대생 700명은 가좌동 캠퍼스에서 전두환·노태우의 화형식을 한 뒤 교문 앞으로 진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