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 감독 영화들을 보면 고통은 적룡이 받고 해결은 강대위가 하는 게 좀 있는데... 예를 들어 <복수>나 <신독비도>는 적룡이 앞에서 싸우다가 죽으면 강대위가 뒤에서 복수를 함. <복수>는 그 두 부분이 완전히 나뉘어 있어서 두 사람이 같은 장면에 나오지조차 않는다.
적룡이 죽는 방식은 고문에 가까운데 장철은 그걸 집요하게 탐미주의적으로 찍어서, 이 사람은 이거 찍으려고 영화 만드는구나 싶었다. 강대위의 해결보다 적룡의 고통이 더... 좋다고 해야 하나? 인상적이라고 해야하나? 격렬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주인공을 고통스럽게 할수록 그 해결과의 단차가 생겨 카타르시스가 커진다고 흔히들 얘기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작품들에서 고통은 그냥 해결의 정당성을 위한 전제로 간단히만 표현하는 일이 많다. 누구나 "음 이러면 복수할 만하지"하는 생각이 바로 들 만할, 클리셰에 가까운 걸로. 예를 들어 미국 영화라면 차를 훔치고 개를 죽인 놈은 능지처참을 당해도 괜찮음.